나의 사랑하는 생활 나는 등에 살짝 땀이 날 정도의 햇빛 아래에서 팔뚝을 지지며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생활을 사랑한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에는 덩어리째 박혀있는 구름들 아래를 이리저리 다녀주어야 가슴 한편에 숨구멍이 생긴다. 자전거 바퀴가 내 얼굴 크기만 해서 멀리는 못가도 지하철 2 정거장 거리에 있는 호수공원을 자주 들락거린다. 쉰을 넘기기 전에는 신호등도 없고 마스크를 안 껴도 되며 구름만 쳐다보며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어느 날 가족들이 놀러 오면 일렬로 줄지어 하늘과 앞사람 등을 보면서 동네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나는 이동 수단에 타는 것을 좋아한다. 지면에서 떨어지는 비행기 바퀴의 느낌을 특히 좋아하는데 슈퍼맨이 바닥을 박차고 날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코를 훌쩍이며 작은 배의 갑판 위에 서있는 것도 좋아한다. 포르토의 젖은 돌바닥을 미끄러지며 코너를 도는 트램도 좋아한다. 구름을 뚫고 털털거리며 경사로를 올라가는 리기산의 산악열차도 좋았다. 창밖으로 모르는 사람들이 수없이 스쳐가는 동네 마을버스도 좋아한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시외버스에 앉아 처음 보는 간판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엔 동네에서 자전거를 탄다. 나는 가벼운 음주를 좋아한다. 한낮의 덜 마른 잔디 위에서 마시는 상큼한 쇼비뇽 블랑을 즐긴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진짜로 막 잔이라며 시키는 생맥주 500cc를 좋아한다. 술을 잘 못하는 엄마가 짠 하자며 건네는 소주 한 잔도 맛이 좋다. 책을 보며 마시는 씁쓸한 IPA 캔맥주도 좋아한다. 런던에 내가 자주 가던 공원 꼭대기에는 피닉스라는 펍이 있는데 야외 테이블에서 마시는 기네스 한 잔에 불사조처럼 힘이 솟아났었다. 퇴근 후 이마트에서 와인 한 병을 주저 없이 고를 수 있는 날이면 내 생활이 더 사랑스러워진다. 나는 결국 사라질 색상들을 좋아한다. 어제 나온 듯한 새순과 코스모스 밭의 진분홍색 꽃잎들은 휴대폰 갤러리에 단골 사진들이다. 운이 좋은 어느 저녁, 주홍색, 핑크색,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노을을 하던 일을 다 멈추고 숨도 참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 검은색 하늘에 네온사인이 보이기 시작하면 남겨진 애인같이 마음이 절절해진다. 디자인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들은 만들 수가 없어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나는 귀여운 생물들을 좋아한다. 길가의 마네킹을 따라 팔을 열심히 꺾어보는 여자아이가 너무 귀여워 몰래 따라 해본다. 주인이 열심히 불러도 내 앞에서 배를 보이며 바라보는 강아지도 좋다. 호텔 뷔페에 미리 내려와 가족들 자리에 바나나 하나씩을 깔아놓고 기다리는 어느 가장도 좋았다. 생판 모르는 내 다리에 털을 잔뜩 묻히고 가는 길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행운 중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연락 없이 불쑥 찾아오는 엄마, 아빠도 귀엽다고 할 수 있겠다. 무뚝뚝한 딸의 생활이 많이도 궁금했나 보다. 세상에 좋아하는 게 이렇게 많은데 자꾸 싫은 것만 기억해낼 때 나에게 이 글을 들이밀고 싶다. 좋아했던, 좋아하는 작은 것들을 항상 까먹지 않고 더해가고 싶다. 2020.09~10<공대생의 심야서재>로 유명하신 이석현 작가님의 수업 <에세이 쓰는 시간>을 들으면서 썼던 에세이입니다.
